최근 포토로그

KTH

1884년 이전의 한국의 정세와 선교

  유럽과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한국 선교를 위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구츨라프, 토마스, 로스 및 그 외에 선교사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활동했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당신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역사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 또는 사회적 운동을 통해서도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한국의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1800년 이전에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온 뒤 얼마 안 되어 정부의 정책은 기독교에 관계된 모든 것은 격렬히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연이어 박해가 일어나고 많은 순교자가 생겨났다. 그렇게 되니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선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한국정부는 고유한 전통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쇄국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섭정으로 있던 대원군은 이 쇄국정책에 광적이라고 할 만큼 열정적이어서 1885년 곧 고종 3년 정월에는 천주교인이었던 승지 홍봉주, 남종삼 등과 프랑스 선교사 9명을 죽이고 8도에 영을 내려 많은 신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프랑스 선교사 리델(Ridel)은 몰래 배를 타고 빠져나가 천진에 있는 프랑스 수사 제독 로제(Rose)에게 그 경과를 보고하고 후에 페론(Ferron)과 칼라이스(Colais) 두 신부도 한국을 탈출하여 중국 지프로 갔다. 이에 로제는 북경에 주제중인 프랑스 대리 공사에게 한국 사태를 보고 하였고 대리 공사는 중국 곧 당시의 청국 정부에 이를 항의하였다. 그것은 그가 한국이 청국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조정에서는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한국의 특산물인 종이와 함께 여러 가지 귀한 선물을 보냈고 청나라에서도 한국으로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청나라 사신이 한국에 올 때는 서울의 성 안으로 들어와 유하는 것을 금하고 반드시 대문 밖 지금의 독립문이 있는 근처에서만 유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청나라의 속국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청나라 정부는 한국을 간섭할만한 권한이 없다고 하면서 프랑스 공사의 항의를 거부하였다. 프랑스 공사는 로제에게 명하여 군함을 거느리고 와서 선교사 학살에 항의를 하면서 강화도 일부를 점령하였으나 조정에서는 5천명을 파견하여 이를 격파하고 프랑스 함대는 물러갔다.

  한편 1886년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너럴셔먼호가 상품을 싣고 대동강 상류로 왔다가 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배에 함께 타고 있던 토마스 목사도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실이 후에 미국 정부에 알려지자 미국 정부는 한국에 문책을 하고 동시에 강제로 통상조약을 맺으려고 북경에 있는 미국 공사에게 훈령하여 아시아 함대를 출동케 했다. 그리하여 1871년 곧 고종 8년 신미년 미국 군함 5척이 경기도 근해에 나타나 강화도 근처로 들어오려 했는데 강화 수병 5백 명이 이를 물리쳐서 미국 함대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강화에서 물러가니 이것이 소위 신미양요 사건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대원군의 기세는 더욱 도도해졌다. 그러나 1874년에 이르러 고종의 나이도 22세가 되어 친히 정사를 보살필 수 있게 되었으므로 대원군은 섭정의 자리를 내놓고 하야하게 되었다. 대원군은 자기의 자부 곧 왕비를 선택할 때에 외척의 세도를 막기 위하여 일부러 고독한 집안에서 자라난 자기의 처조카 딸을 택했다. 그리고 대원군의 속마음은 자신이 나라의 정사를 오랫동안 잡으려고 했는데 영명한 왕비는 도리어 자기 시아버지인 대원군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여 대원군을 하야 시키고 정권을 민씨파의 손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 후로 민씨와 대원군 사이에는 여러 가지 암투와 갈등이 계속 되다가 결국은 임오군란이란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민씨파가 세도를 잡으면서 1874년부터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버리고 왜국에 대하여 새로운 정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병자조약 혹은 강화도 조약이라는 것을 1876년에 일본과 맺어 우호 관계를 갖게 되고 또한 통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사실 한국에서 자진하여 체결한 것은 아니고 세계 대세로 보아 어찌할 수 없이 체결한 조약이었다.

  대원군 후에 세도를 잡은 민씨파는 당연히 퇴폐되어 있던 내정을 혁신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비교적 진보적인 사상을 가졌으면서도 시급한 내정 혁신 문제에 손을 대지 못했다. 여기에 불만은 품을 우국청년 박영효, 김옥균, 홍영식 등은 개화파를 형성하여 국정을 혁신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이때에 일본이 이 개화파와 호응하여 그 세력을 차츰 한국에 심으려 함으로 개화파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민씨파와 일본의 한국 세력이 뿌리내리는 것을 싫어하는 청나라가 서로 가까이 하게 되어 결국 개화파는 친일적 태도를 취하고 민씨파는 친청적 태도를 취하여 서로 대립이 되었다. 

  1882년 곧 임오년 6월에 군인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당시 민씨파에서는 예전 군대를 신식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예전의 군인들은 이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은근히 민씨파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13개월 동안이나 급료를 받지 못해서 군인들의 분노가 더해져 가고 있었는데 13개월 만에 급료를 받은 쌀이 그 질도 나쁘고 분량도 적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은 참고 있던 화를 누르지 못하여 난동을 부리게 된 것인데 대원군이 그 뒤에서 은근히 선동했을 것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고 있다. 군인들은 민씨 집에 몰려가 살육하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다. 일이 이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조정에서는 대원군을 불러들여 난군을 진압시키고 시국을 수습하는 책임을 맡겼다.

  여러 해 동안 정권을 잃고 울분하여 있던 대원군은 또 다시 권세를 잡고 병권과 재정권을 쥐고 나라를 마음대로 흔들었다. 이때에 민씨파는 청나라에 원조를 청했다. 기회만 엿보고 있던 청나라는 군사 4,500명을 거느리고 한국에 들어와 대원군을 납치해 가고 다시 민씨파를 내세워 한국이 마치 청나라의 속국인 것처럼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납치당한 대원군은 청나라 정부에서 3년 동안 유폐를 당했고 군란을 피하여 피신했던 민비는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한편 임오군란 때 일본 공사관을 습격했다는 이유로 소위 제물포 조약을 맺어 일본 공사관 호위병으로 일본 군인을 한국 땅에 배치하게 되니 한국 땅에는 결국 청국군과 일본군이 다 주둔하게 되었다. 이것이 1894년에 열린 청일전쟁의 준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882년 고종 19년에 천진에서 한미 통상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 때 이홍장이 조약문에 밝힌 것은 한국에서 선교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조약이 실제로 체결 조인될 때는 이 조문은 빼 놓았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서의 종교의 자유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 후 영국, 독일 등의 열강 제국과 통상 조약을 맺게 되면서 나라는 완전히 개방되고 따라서 외국 선교사도 정식으로 한국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덧글

  • 젠틀맨 2014/07/07 22:31 # 삭제 답글

    지금 이 한 순간에 마케팅의 드라마가 있다
  • 옛이야기 2014/07/07 22:51 # 삭제 답글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완전 좋으내요~~^^즐거운 하루 되세요~~
  • Railroader 2014/07/08 07:29 # 삭제 답글

    두대 있어요~ 1490,1491호인데, 그래봤자 예비입니다ㅋㅋ
    제 블로그에는 1491호사진 있지용
  • 심슨픽 2014/07/08 14:4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여 반가워요~
    23살이구 스포츠를사랑합니다 !!
  • 영발이 2014/07/08 18:42 # 삭제 답글

    흐흐 여기 좋아요! 그리고 저 프라쑤멘요새도 , 피아팃로드도 ..다 좋아요..제가 방콕에서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 언제가려나 방콕~ㅠㅠ
  • B 2014/07/09 04:40 # 삭제 답글

    달달한거 땡기네요 ㅋㅋ제 사진은 못쉥겨서 패스
  • 미학부동산스토리 2014/07/09 22:51 # 삭제 답글

    정말 대단하네요...
    좋은작품 감상 잘했습니다...
  • 서가이버 2014/07/09 23:37 # 삭제 답글

    대단한 나라~
  • 늘보아제 2014/07/10 03:01 # 삭제 답글

    저도 꼭읽어봐야겠어요^^
  • 잉꼬아빠 2014/07/12 14:12 # 삭제 답글

    조용한 밤에..혼자....스탠드 켜놓고..
    커피 한잔 옆에 두고..천천히 생각하면서 보기에 좋을것 같아요^^
댓글 입력 영역


리얼클릭

스폰서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