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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윌리암슨의 고려문 제도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lliamson)은 한국인의 지성과 성품과 윤리적 생활이 우수한 점, 그리고 명민한 판단과 담 큰 결단력, 지력과 지하자원까지 언급하고 수운의 편리함도 서술한 후 “이 나라에 없는 것은 다만 서양의 종교와 그 문명의 박차와 지도”라도 했다. 당시 조선은 강경한 쇄국정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전도의 가능성은 사실 그리 낙관적인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조선의 쇄국정책에 있었다. 하지만 윌리암슨은 한국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서구 기독교 여러 나라의 무력간섭을 꾀하고 그 무력의 시위로서 개국을 강요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는 “대영 제국과 미국 같은 나라들이 한국과 같이 어리석고도 무식하게 폐쇄하고 있는 나라들을 개방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의무요 특권이라고 믿는다”고 서슴지 않고 제안했으며 “전쟁이라는 것이 비록 악이기는 하지만 진실한 문명의 불빛에 완전히 접촉하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은 결국에는 선의 상쇄로 끝날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전쟁은 모든 면에서 무시무시한 악이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계에서는 진보의 한 수단인 듯하다. 사람을 참된 문명의 광채와 완전히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게 될 도덕적 지적, 그리고 영적 특권이라는 관점에서 그 대가는 헤아릴 수 없는 효과를 가져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윌리암슨은 누구 못지않은 불타는 복음의 열정이 있었지만 선교 방법에 있어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발견한다. 비록 한국의 개방을 위해 전쟁이 불가피 하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무력을 통해서라도 이 나라를 개방하도록 만드는 일이야말로 일종의 거룩한 소명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이러한 강경한 선교 정책의 이론 자체가 벌써 서구적인 기독교국의 교회론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의 이 제한은 그것 그대로 당당한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인류는 피차 공동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어 동행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피차 피할 수 없는 상황적인 의무감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자가 약자를 돕고 지자가 우자를 문명인이 미개인을 돕고 인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선의의 동기와 평화적인 내일의 신앙 세계에 대한 갈망 밖에는 이 무력행사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한국 백성이 알아 줄 날이 그 이후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 그는, 선교의 역사적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 개신교회사 이전의 역사 속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중국으로 박해를 피해갔던 리델 신부가 무력을 동원하면서까지 한국의 선교의 문을 열려고 한 것이나, 토마스 목사가 프랑스 함대의 통역으로 국내에 입국하려고 한 이면에서 우리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 출신 선교사들의 내면에 복음의 열정이 제국주의 패권의식으로 채색되어 복음의 순수성이 희석된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우리는 구츨라프, 토마스, 윌리암슨에게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불타는 선교의 열정, 복음의 열정을 발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의식 세계가 역시 당시 강대국 백성이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적 패권의식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당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복음 본래의 순수성이 깊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움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이들은 후대 한국 선교를 위해 중요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세계복음화를 계획하고 계심을 역사의 현장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중국으로 박해를 피해갔던 프랑스 리델 신부는 무력을 동원
                                      하면서까지 한국의 선교의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관련 사진: 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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