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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한국 입성

  18세기부터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구미제국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선교사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썼다. 그들은 생명과 물질과 시간을 바쳐 당시에 미개하고 어두운 지역에 빛을 비추었다. 만일 이런 세기적인 선교산업이 없었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에 이르는 많은 나라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흑암에 묶여 구원의 여망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표가 되매 어두운 동양에 복음의 빛을 비추셨다.
   한편, 선교산업에 투입된 자금과 인원 역시 거대했다. 해마다 미지의 나라로 파송되는 선교사들을 위해 구미 선교부는 막대한 양의 외화를 소비했고, 이에 수반된 인원 역시 수천 명에 달한 바 있다. 문제는 선교사들의 파송은 우리의 생각처럼 자신의 임의로, 혹은 선택에 따라서 파송된 것이 아니었다. 매우 놀라운 사실은 어떤 선교사를 막론하고 자신의 결정보다는, 그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같은 인물은 본래는 일본으로 가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한국으로 파송됐고,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 Wood)도 본래는 인도로 가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한국으로 파송하셨다. 모든 선교사역은 인간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성경을 가장 처음으로 전해준 사람은 영국인 바실 홀(Basil Hall)이었다. 그는 1816년에 영국에서 중국으로 파견한 사절단을 태우고 온 배의 선장으로서 한국 서해안을 측량할 목적으로 맥스웰(Maxwell)이라는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1816년 9월 1일에 황해도 백령도와 청도 근방에 상륙했다.
   그는 거기서 여러 가지 진귀한 물품을 주민들에게 주는 동시에 당시 중국 선교사로 와 있던 모리슨(Morrison) 목사의 부탁으로 가지고 왔던 한문 성경을 주었다. 그 다음에는 군산만으로 들어가 그곳 관리들을 만나 다른 선물과 함께 성경을 전해 주었다. 그는 다시 약 10일 동안에 걸쳐 전라도 다도해 근방을 순회하며 추자도에 상륙한 일이 있었는데 아마 여기서도 성경을 전했을 것이다.
   1832년에 프랑스 신부 빠텔레미 부르지에가 최초의 한국 신부로 임명되어 우리나라에 올 때 독일인 개신교 선교사도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 사람이 칼 구츨라프(Carl A. F. Gutzlaff)였다. 그는 중국에서 선교하던 사람으로서 유명한 중국의 개척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의 친구였다.
   그는 1832년(순조 32년)에 동인도 회사의 통역관으로 임명되어 중국 북해안을 순항하며 영국이 통상할 만한 항구를 조사했다. 이때 로버트 모리슨은 구츨라프에게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책을 많이 보내 해안지대에 사는 백성들에게 반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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