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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위한 이야기교회사

개신교가 천주교와 근원은 같지만 그 파가 전혀 다른 것은 미국의 개신교는 정치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어서 순량한 사람은 많은데 이는 그 교가 화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는 논리였다. 개신교는 천주교와 다르고 또 정치와 교회의 분리로 천주교와 개신교는 교리상의 문제가 아니고 다만 국가 차이로만 본 역사적 실증적 판단이었다. 그러나 재야 유림들은 이러한 분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876년 한, 일간의 수호조약이 맺어질 때부터 민감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조약문 마무리가 한창일 때 조선은 여섯 개 종목을 추가해 줄 것을 일본 측에 요청하였는데 그 다섯 번째 항목이 기독교에 관한 것이었다. 아편과 기독교를 함께 금수한다는 조목을 꼭 입약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그 때 당장에는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지만 1883년 통상장정 체결 때에는 아편 문제만 명문화되고 기독교 문제는 명문화 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금약의 부재는 1882년에 체결된 한미 수호 조약의 영향이었을 지도 모른다. 한미 수호의 경우에도 개신교 금지 조문을 조선 측이 삽입하려 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슈펠트가 미국 정부를 대표해서 조선에 대한 교섭을 나섰을 때 청나라 이홍장과 조선의 김윤식이 여러 차례 예비회담을 가졌는데 1882년 2월 14일 회담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포교를 금한다는 항목의 삽입을 미국이 듣지 않을 것을 예상한 논란이 치열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해 5월 17일 제물포에서 김홍집이 청나라의 마건충을 만났을 때에도 다시 이점을 따졌지만 마건충 역시 서양종교종목을 넣을 경우 조약은 구미 어느 나라와도 맺지 못한다는 점을 재삼 천명하였던 것이다.
  1882년 5월 22일 제물포 산양의 천막에서는 슈펠트와 조선의 김홍집과 신헌 사이에 한미수호조약이 맺어졌다. 거기에는 개신교의 선교금지가 명문화 되지 않았다. 개신교로서는 귀중한 소득이었다. 이 조약에는 다만 양쪽 생도가 피차의 나라에 왕래하면서 학문이나 언어 예술을 비롯한 여러 사업을 학습하고 도와서 우의를 돈독히 한다는 글이 이른바 문화 관계에 언급한 유일한 것이었다. 1883년 11월 영국이나 독일과 수호조약을 맺을 때는 서양인들이 그들 사이에서는 그 지정된 거주지에서 저들이 믿는 종교의 예식을 집행을 가능케 하는 글이 실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서양인들 사이에서의 예배는 1886년 7월 23일에 가서야 비로소 실현 가능한 단계에 올라섰다. 그 날짜로 조선 미국 대리공사 파커(W. H. Parker)는 “이제부터 서울에 있는 외국인들은 이 공사관 안에서 매주일 아침 11시에 예배를 목적으로 한 회집을 하고 이 예배 의식은 매우 정숙하게 드려질 것이며 아울러 서울에 있는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위해서 기원 할 것입니다.”라고 통고하였다.
  이러한 조약을 구미 각국과 체결하면서도 고종황제는 이 통상 수호 조약의 예가 반드시 그들 종교의 전파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재삼 다짐 하였다. “만일 어떤 어리석고 머리가 빈 백성이 이국 종교를 배우고 그것을 신앙하게 된다면 이들을 처단할 법률을 광범위하게 보류한다.”고 엄격하게 경고하였다. 이렇듯 기독교의 포교는 계속 억제 금교 되고 있었다. 1884년 7월에 일본에 머물던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맥레이(Robert S. Maclay)가 김옥균을 통하여 고종으로부터 “한국에서 병원과 학교 사업을 시작해도 좋다”는 사사로운 허락을 받은 일이 있었다. 기독교의 종교적 요소보다는 그 서구 문명적인 요소에 더 빨리 끌렸던 왕실의 조치였을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는 한국에서 이선을 따라 우선 손을 대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박영효와 김옥균의 생각은 대개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고종황제 역시 이들의 권유에 귀를 기울인 것이 확실하다.
  개신교는 근대 조선에서 선교의 자유를 우선 찾지 않았다. 살고 사랑해서 뭔가 남겨져 그 선교 자유가 부여된 것이었다. 헌신과 조국애와 정의의 구현, 성실한 민족으로서의 새로운 기강의 확립과 이러한 발걸음 그 흔적에 저절로 선교 자유의 윤허를 촉진하는 소리들이 높아갔고 그것이 마침내 이 땅에 복음의 깃발을 드높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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