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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앙에서 생명 운동의 역사로

20세기 후반부터 교회는 어느 시대보다 더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는 불확실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서구 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인식론적인 상대주의는 종교개혁이후 성경의 진리 자체에 대한 의심을 제기해 왔다. 오랫동안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이성이라는 기준으로부터 계속적인 도전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진리의 기준은 사라지고 모든 가치는 상대화되어 가고 있다.

종교나 문화의 기본적인 방법은 언제나 도덕적인 선행이다. 그것을 사다리로 만들어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라가지 못하고 포기하였고 또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같은 방법으로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을 구원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방법은 전혀 반대였다. 아래의 영역에서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었다. 아래에서 최선을 다하면 위에서 끌어 주는 것도 아니다. 구원의 길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온다. 즉, 위의 영역이 아래의 영역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리를 버리고 사람이 되어 아래의 영역으로 돌아오셨다. 그리하여 인간이 할 수 없었던 구원의 모든 길을 스스로 다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원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구원은 자기 것이 되었다. 그 구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하늘에서 온 구원의 소식을 믿는 자들에게 그 내용대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위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아래에 속한 인간은 위의 영역으로 인도 되는 것이다.

중세기초까지 이러한 가르침은 아주 분명하였다. 위의 영역은 한마디로 은총이었고 아래는 자연이었다. 은총은 자연이 지향하는 방향이었고 자연은 은총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중세 후반부터 이러한 도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도들과 또 제자들의 증언과 헌신을 통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주변의 나라들로 확산되었으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교회가 섰다. 교회는 처음 300∼400년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제국에서 성장하고 확장되는 과정에서 심한 박해도 받고 이교의 사상과 이단적인 사상의 공격도 많이 받았다. 그 시기에 많은 교부들이 일어나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며 교회의 기초를 공고히 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삼위일체의 교리를 고백했으며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것을 고백하고 믿었다.

7세기경에 일어난 이슬람이 소아시아와 시리아 북아프리카를 점령함으로 인해 기독교 세계는 그 만큼 좁아져서 교회역사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유럽의 기독교는 3∼4세기경부터 13세기까지 진행 됐다. 중세시대 교회가 게르만들의 국가 종교로 자리하면서 교황은 세속의 일에 관여하고 제왕들은 교회마저 관장하려는 과정에서 양자는 갈등과 충돌, 야합과 굴종을 거듭하면서 교회는 세속화되고 부패하게 되었다. 11세기부터 13세기의 십자군운동으로 인한 봉건사회의 붕괴와 사업과 교역의 진흥과 중산층의 부상은 왕권의 강화와 교황권의 위축을 초래하였고 이슬람권과의 문물의 교류는 유럽 지성인들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이 때 대학이 세워지고 문예부흥과 인문주의의 확산으로 지성인들은 교황주의 교회에 비판을 가하게 되었고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중세기의 교회는 부패하게 되었으나 교회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여러 쇄신 운동들이 있었고 많은 신학자들의 신학 연구도 있었다. 종교개혁운동과 신학은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종교개혁 운동은 신학과 함께 중세 교회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초기부터 이단 분파 운동이 있었다. 11세기 중엽에는 하나였던 교회가 동방의 희랍 정교회와 서방의 가톨릭교회로 분리됐다. 성경과 교리에 대한 차이도 분리의 요인이었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도 분리의 요인이었고 더 큰 원인은 교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종교개혁을 계기로 해서 신학적인 견해의 차이에서 서방의 가톨릭교회는 로마가톨릭 루터교회, 개혁교회, 앵글리칸교회 등 여러 소그룹의 교회들로 분열하게 되었고 종교개혁의 교회는 언어와 민족을 단위로 하는 국민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유럽의 이민자들로 형성된 미국의 교회는 다양한 교파교회로 발전하였다.

17세기 중엽에 대두된 계몽사조로 인하여 교회와 세속은 완전히 이분화 되고 교회와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사상이 점차로 고조되면서 계몽사조의 합리주의 사상으로 인한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상과 신학은 18세기와 19세기에는 합리주의적인 자유주의 신학으로 발전하였으며 20세기에는 현대 신학으로 발전하게 되어 위기신학을 거처 기독교 신앙을 이데올로기화 하는 세속신학 정치신학 상황신학 등으로 발전하였고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산물인 탈기독교적인 종교다원주의를 낳게 되었으니 복음이 완전히 상실되어 가고 그리스도는 하나의 종교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인 신학사상과 운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신앙을 회의하게 할 뿐만이 아니라 교회를 세속화 시키며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신학의 영향이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고 손해를 끼치고 있다.

계몽사조와 때를 같이하여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과 그 영향을 받은 부흥운동이 일어나서 많은 교회들과 신자들이 영적인 각성을 하게 되고 복음주의 운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중생과 거룩한 구원 얻은 새 사람으로 살 것을 강조한다.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19세기와 20세기에 복음은 온 세계로 전파되어 가고 있으나 기독교 문화를 이루었다는 서구의 교회는 “기독시대 종말”에 세속 문화에 동화 되어가고 침몰해 가고 있다.

볼테르는 새벽에 산에 올라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서 외쳤다. “오! 하나님 믿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인 것을” 그는 성경의 내용이 모순투성이임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이성의 원칙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내용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성경과 신앙의 전통은 더욱더 난도질을 당해가고 있다.

20세기의 실존주의는 진리를 주관화 시켰다. 즉 인간의 경험이 곧 진리였다. 죄인인 인간이 경험할 것이 허무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절망, 공허와 무의미, 죽음 어느 것으로도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가치관 이것들의 반동은 더욱 더 큰 허무였다. 자살, 무관심, 절망,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을 포기한 인간에게 주어진 결과가 되었으니 한 마디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변화의 근본적인 힘은 오직 위에서부터 온다. 그래서 역사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가진 교회는 그대로 보존되고 존속한다. 그 정체성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가 그리스도인 사실을 고백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다운 교회는 사도들이 전수한 신앙고백을 따라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사실을 확신하고 믿는 것이다. 21세기에는 불확실하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진리인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 때문에 교회사는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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