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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 직전까지 모든 시간, 능력을 그리스도께

구세군은 1879년 초부터 급속히 발전했다. 선교회 기록표지에 구세군이라는 새 이름이 붙었으며 선교회 잡지 이름을 구세군(Salvationist)인으로 고치고 이 잡지를 통해 부스는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전 회원들에게 주입했다. 구세군의 병사(soldier)가 독특한 것은 군기와 계급을 정식으로 책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군기는 삼색으로 적색은 예수의 구속하시는 보혈, 청색은 신자들이 가져야 할 성결의 생활, 노란색은 신성한 봉사에 힘을 주시는 성령의 불을 상징한다. 또한 제복 착용으로 구세군인의 헌신적인 목적을 얼른 알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혈화(血火)의 깃발 아래 입대하는 남자나 여자들을 위해 교리신조 11개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1) 신구약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 졌으며 성서만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의 표준임을 믿으며 (2) 유일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만이 만물의 창조자, 보존자, 통치자이시며 예배의 참 대상이심을 믿는 것 (3) 하나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유가 있으며 이는 본질상 동일하시고 권능과 영광으로도 동등하심을 믿는 신앙과 영원한 생명, 육체의 부활, 세상의 총 심판, 의인의 영원한 항복과 악인의 영원한 형벌을 믿는다 제정되었다.
본래 윌리암 부스는 선교 사업을 세계로 파급시키려는 계획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동부 런던에 선교회를 세울 때 그는 자기 평생 그 지역 주민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세군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아이슬란드, 일본, 한국, 미얀마, 중국, 러시아에 파급되어 갔다. 초대 교회시대에 그랬듯이 신자들이 가는 곳마다 천국의 좋은 씨를 뿌렸고 그것이 자라 각각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창립자 윌리엄 부스가 별세하기 전에는 구세군은 58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1942년에 구세군은 전세계 350개의 부녀자를 위한 사회 복지 시설이 있었으며 그밖에 사랑과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헌신적 봉사 정신에 기인하였다. 사랑하는 아내 캐서린이 세상을 떠난 후 윌리엄 부스의 해외 여행은 문서 전도를 위해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구세군의 대장이며 아버지인 부스는 바쁜 중에도 자녀 교육에 관심을 두었다. 다른 부모들 보다 더 엄격하게 가르쳤고 채찍도 아끼지 않았으며 태만한 것을 보면 참지 못했다. 또한 자식들을 선교회에 강제로 들어오게 한 일은 없었다. 단지 선교회 일을 맡기 위해 '자기 자신이 전도자가 되도록 가진 재능, 가진 기회를 다 사용해야 하고 하나님과 네 환경이 네게 소명감을 주어 공부를 집행해야 할 어려운 지위에 설 수 있도록 충분한 자격을 갖추기 바란다'며 성년이 된 맏아들 브람웰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윌리엄 부스 평생 마음 가운데 성지방문 간직한 소원이 있었다.
1905년 76세 된 부스에게 성지의 땅을 밟을 수 있는 오랜 숙원이 이루어다. 성도 예루살렘을 찾아온 부스는 감격해했다. 그는 성지에서 구령운동을 펴기로 결정했고 저녁집회에 작은 회관 내에 250명의 회중을 향해 중심으로 구원의 소식을 전한 후 믿기로 작정하는 분이 있으며 앞자리에 나오도록 권고했다. 어떤 미국 부인과 그의 일행도 따라나와 엎드려 기도했다. 밤 집회 때 9명, 그 다음날도 계속 11명의 새 구도자를 얻었다. 이런 집회는 예루살렘에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 단순한 설교에 뒤이어 사람들을 구원의 자리로 불러내는 일은 확실히 새로운 형식의 집회임에 틀림없다. 부스는 마지막 전도여행으로 정치하면서 사람들에게 그의 영혼의 의욕과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알게 하려고 힘썼다. 수천 수만의 군중이 대장의 메시지를 들었고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하였다.
1912년 8월 20일 윌리엄 부스는 드디어 83세를 일기로 승천하였다. 그는 승천 직전까지 한번도 저녁식사를 조용히 지낸 일이 없다. 그가 끝까지 앞세운 구호처럼 모든 시간, 모든 능력을 그리스도와 자신의 의무를 위해 바친 것이다. 회심한 후 68년간 이 약속을 지켜왔다. 묘지로 향하는 길에는 무수한 군중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그 가운데 무개차 위에 수인 부스 대장의 시신은 고요히 지나갔다. 그 차 뒤에는 아들 브람웰 부스와 가족들, 각국 구세군 대표로 온 병사들, 사관들 1만 명이 따르고 있었다. 해외에서 건너온 구세군인들도 창립자에 의해 어린양의 피로 씻기움을 받고 구령 전에 참가하게 된 용사들이었다.

장남 브람웰 부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휘권을 받았다. 그는 구세군 단체의 첫 조직자이다. 모든 운동을 조직적인 질서를 갖게 하였다. 정치가들의 경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구세군이 일반 대중의 복리를 위해 불가결한 훈련과 실제적인 질서를 갖게 하였다. 브람웰 부스의 은퇴 발표 후 구세군 최고 회의는 창립자의 삼녀인 에반 제린 부스를 대장으로 선임하였다. 에반 제린 부스 역시 전 생애를 하나님께 바쳤으며 계속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여 마침내 구세군의 최고 지도자로 선임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도자로서 윌리엄 부스의 정신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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