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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제3세계의 기독교 운동을 제3의 물결이라고도 한다. 이 운동을 통해서 자연에 속한 인간이 은총의 세계를 맛보고 그 세계로 뛰어오르게 될 것인지 무엇이라고 말하기에 아직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제나 신앙은 반드시 믿을 내용이 주어져야 하고 주어질 때 신앙의 물결은 시대의 역사를 적시고 흘러간다.

아프리카 대륙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슬람의 침투가 가장 활발한 도에서는 교회의 성장이 가장 느린 반면 대륙 전반에 걸쳐서는 기독교 인구가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1900년부터 1950년 사이에 아프리카의 기독교 인구는 6배로 증가 했으며 그때 이후로도 증가율은 계속 높아가고 있다. 서구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교회들이 벌이고 있는 선교 사업은 아직 많은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다. 가장 극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역은 토착민의 독립교회가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의 기독교
20세기 초에 몇 명의 유명한 아프리카 예언자들이 나타났었다. 그중에 윌리엄 해리스가 유명하다. 1913년부터 1915년 사이에 그의 설교를 듣고 수천 명이 회심했으며 영국 감리교의 선교사들은 이들을 그들의 교회로 모아 들였다. 이 운동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부분적으로는 백인의 통치에 대한 반동이며 그 현상에서 나타난 많은 아프리카적 특징은 서구의 선교 단체들과 관련을 맺고 서구의 카리스마적 집단들과 유사한 예배에서 자발성을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기독교는 1929년 우간다에서 시작된 부흥 운동에 의해서 자극을 받았다. 영국에서 온 선교사인 의사 한 사람과 우간다의 신자 한 사람의 사역으로 시작된 영적 각성 운동은 우간다를 통하여 케냐, 탄자니아로 그 후 중앙아프리카와 북쪽의 수단과 에티오피아로 전파됐다. 그 운동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교회 생활을 정화하고 강화하는 요소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계속 남아 있다. 박해도 있었는데 수단, 에티오피아, 차드, 케냐, 부른디, 자이레, 우간다에서는 대량 학살도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교회의 증가율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증가했고 아프리카 복음화에 큰 힘을 더해 줬다.

▲라틴아메리카의 기독교 - 해방신학
1900년에는 라틴 아메리카에 5만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1984년에 이르러서는 이 숫자가 2,500-3,0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제 2차 바티칸 회의가 보여준 개신교도들에 대한 새로운 자세는 로마 가톨릭의 박해가 완화됐음을 의미했다. 선교사들과 현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도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특히 오순절 교회들이 앞장섰다. 오순절 교회들은 노동자 계층에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다른 교회들 보다 쉽게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 형태에 익숙해졌다. 처음부터 오순절 교인들은 대부분이 토착화 되었으며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는 그 자체 내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현실적 사고와 특수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에 자극을 주기도 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그 지역의 전반적인 사회적 조건들로 인하여 매우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본래부터 앓고 있는 문제들 즉 외국 경제 통제, 부의 불평등한 분배, 독립 정권 등과 씨름해야만 했다. 그래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양쪽의 신학자들이 참여하여 ‘해방 신학’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이 볼 때 서구 신학은 빈곤, 인종차별, 억압에 관해서는 말해 주는 것이 별로 없었다. 브라질의 헬더 카마다와 페루의 구스타보 쿠티에레츠와 같은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은 해방의 측면과 성경적 신앙의 현실적 차원을 강조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해방신학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하여 공감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강조하는 바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를 계속 보존하고자 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반드시 생활 전반에 적용돼야 한다는 것은 인식하였으나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견해를 취하는데서 오는 위험들을 안고 있었으나 모든 원인이 영적인데 있다는 복음적 신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교회의 귀중성을 인정했으나 내적으로는 비복음적 사상이 가득했다.

과테말라의 장로교 선교사들은 급속히 팽창하는 교회들에게 목회자들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전통적인 훈련 방법으로는 대처할 능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공부만하는 학생들을 지원할 재정도 충당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1962년 특별강좌에 의한 신학 교육제도를 고안해 냈다. 이것은 학생들이 집에서 공부하고 훈련된 지도자들이 때때로 그들을 방문하여 도와주고 격려하는 교육 제도이다. 이것이 매우 효율족인 방법이라고 입증되어 특히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지방에서 널리 채택되었다. 다른 커다란 혁신은 철저한 복음 전도였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있는 복음운동
제3세계 기독교의 성장으로 2차 대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은 기독교의 발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점차 이러한 사실들을 인식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3세계 출신의 지도자들이 그와 같은 회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전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고 또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제3세계 국가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분야의 다른 것들로는 신학 교육과 신학적 저술들을 들 수 있으며 출판 중에 있는 문헌들은 조만간에 서구 사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3세계가 점차 관여하게 될 다른 분야의 기독교 사업은 선교 분야이다. 타 문화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3세계 출신의 선교사 수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 나라가 한국의 교회이다.

이제는 새 신앙운동을 대망해야 한다. 하늘의 생명으로 심령이 변하고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신자로 변화해야 한다. 역사상 가장 타락하고 험한 시대에 사는 신자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 교회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 속에서 나온 것으로는 절대로 인간의 근분 문제(구원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살다가 삶의 허무와 무의미를 깨달았다고 하자. 또 자기의 죄악 된 삶을 깨닫고 크게 뉘우쳤다고 하자.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할지라도 이 사람이 무슨 새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생명이 그에게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나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는 여전히 자연에 속한 타락한 인간 즉 하나님을 떠난 존재일 뿐이다. 그가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고 해도 기도하다가 신비체험을 했다 해도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회 일에 열심을 낸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가 변화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럴수도 있겠지만 변화의 증거는 아니다.

변화의 근본적인 힘은 오로지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형태로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타나는 변화는 일시적이요 인간적인 차원일 뿐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늘의 차원의 변화는 반드시 계시의 지식이 주어진다. 신비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은 반드시 복음의 말씀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역사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가진 교회는 그대로 보존되고 존속한다. 그리스도 교회다운 교회는 사도들이 전수한 오직 그리스도인 신앙고백을 따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창조주 하나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기도하며 약속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하되 루터나 칼빈과 같은 위대한 전도자를 따라서 생명적 헌신을 하면서 21세기의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세계복음화에 생을 거는 결단을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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