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는 정책적으로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을 억압하면서 유교국가로서 면모를 갖추어 갔다. 불교는 국왕 개인신앙, 왕실신앙, 그리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서적으로 국가를 통합하는 도구로 위치를 유지했다. 국난을 거치면서 교조주의 사변적으로 변질된 유교는 한계를 보이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더 이상 대처하지 못하게 됐다. 대신 조선후기에는 사회윤리로 자리잡은 유교문화와 더불어 토착신앙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실학이나 양명학, 서학의 형태로 전파된 천주교는 ‘사문난적’(斯文亂賊), ‘사교’(邪敎), ‘서교’(西敎)로 국가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갖은 핍박을 받지만 국가문제와 시대 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불교
조선 초기 사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왕족의 명복을 비는 불교행사는 자주 시행됐다. 왕궁이나 양반의 여인들은 불교를 자신의 신앙생활, 정서생활의 일부로 삼고 지속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 전부터 친했던 무학 대사를 왕사로 삼고 천태종의 승려 조구를 국사로 삼았다. 무학은 풍수도참사상에 따라 한양을 도읍으로 삼게 하고 태종의 즉위를 도왔다. 세종은 무학의 제자 기화를 총애하여 그에게 유석일치를 강조하는 『현정론』(顯正論)을 쓰게 했다. 세조는 신미, 수미 등 선승을 신임하고 적극적인 불교진흥정책으로 일시적 진흥을 가져왔다. 성종 이후로 등장한 사림학자들이 왕실불교를 맹렬히 비판해 점차 왕실과 멀어지고 산간으로 들어갔다.
태종, 세종대에 불교의 여러 종파를 교종과 선종의 두 종파로 통합하고, 사찰수를 대폭 줄이며 사찰에서 갖고 있던 특권을 통제했다. 몇 만 결의 토지와 십만의 노비가 국가에 귀속됐고 승려의 자격도 국가에서 제한해 관리했다.
경국대전에는 승려가 되려면 심경 금강경 살달타를 암송하는 시험을 치르고 국가에 무명 20필을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바쳐야 승려신분증인 도첩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승과를 두어 3년마다 60명(선종·교종 각각 30명)을 뽑아 승직을 주고, 주지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 임명했으며 임기는 30개월로 제한했다.
태종,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암흑기였다. 인도승 지공, 태고보우, 혜근나옹 등의 명승이 출현했음에도 정도전, 조준 등의 정치적 공세로 인해 뜻을 펼치지 못했다. 함허득통(1368∼1433)의 불교·유교의 인의예지와 불교의 인간 완성이 같다는 계몽도 있었다. 세종 때 대장경을 다시 인출하고, 세조 때 간경도감을 두어 많은 불서를 국문으로 번역 간행하는 등 불경도 여러 번 간행했다. 세조 때는 일시적으로의 비호시책이 있었으나,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불교는 수난을 겪었다.
1546년 명종 때 문정왕후는 섭정이 되자 화엄의 도리에 밝은 설악산 백담사의 승 보우를 중용, 그의 의견을 들어 봉은사를 선종, 봉선사를 교종의 근거로 삼고 보우와 수진을 각각 양사의 주지로 삼았다.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초에 보우, 휴정, 유정, 언기, 태능 등의 고승이 배출돼 교리를 다시 정비하고 교세를 확장했다. 임진왜란 때는 승군이 국난 극복의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 초기의 불교교리가 선교의 일치를 내세우면서도 법화경, 화엄경을 존중하는 이론불교적인 면이 많이 중시됐다. 16세기 이후 불교는 휴정이 ‘교는 부처의 말이요 선은 부처의 마음’이라고 밝힌 것처럼 ‘선에 역점을 둔 행동 불교적 성격’이 강하다.
▲종교 복합적 생활문화
유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는 국가의식과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는 방편으로 이용했고, 이는 실생활문화에 의식으로 사회윤리로 적용됐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다른 풍속이 나타나는데 관혼상제에서 특징이 드러난다. 조선시대에는 종통관념이 발달하면서 가부장제 일부일처제로 정착되고 축첩을 허용해 적처에 소생이 없을 경우 첩자가 이어가도록 했다. 사족 남자들은 15세부터 20세에 유교식 관례에 따라 상투를 틀고 어른의 법도를 배웠으며 15세, 여자는 14세 이상이면 혼인이 허용됐다. 동성동관끼리의 혼인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불교식 화장이 매장으로 바뀌고, 제사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봉제사의 범위와 무덤의 크기도 달리했다. 6품 이상의 고관은 3대, 7에서 9품의 하급관리는 2대, 그리고 일반평민은 부모만 제사하게 됐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주자가례를 따라 4대까지 제사를 지냈다. 집에는 가묘를 두어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절기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관습도 고려 말부터 시작해 16세기 중엽 이후 널리 관행되기에 이르렀다.
농촌에서 행하는 향도 거사패 사장이라는 종교행사는 샤머니즘과 불교 도교신앙이 결합한 것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정기간 술과 가무로 풍요·다산·안녕을 기원하는 일종의 농촌 축제로 전승되고 있다. 점차 규모가 군 단위에서 마을단위로 축소되고, 주로 상례와 장례을 도와주는 기능으로 변질됐다. 상두꾼이 상여를 매는 풍습이 그것이다.
본질적인 진리체계를 상실하고 여론이나 인기로 급조된 지도자와 구원이 없는 이론이나 사상은 일시적인 분위기조성에 그칠 뿐 인간의 영적문제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조선 왕과 왕실, 지배층의 복합된 종교생활은 민간 신앙생활의 구조와 맞물려 민족의 영적문제를 반복하고 배가시켜왔다. 지도자의 영적 정체성, 국왕과 왕실숭배 사상이 백성들의 영혼과 신앙에 영향을 미쳤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사와 권력으로 공중권세 가진 자가 지도자의 영혼과 삶을 잡고 하나님의 생사권과 주권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어두움의 악한 영이 인간들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혼미하게 하고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활동하기 때문이다(계 12:9, 엡 2:2, 엡 6;12, 고후 4:4, 계 13:15).
인간과 인간의 개념, 인간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연구하는 것이 종교이고 학문이다. 어떤 사상과 종교도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을 제시해줄 수 없다. 인생문제 국가문제의 영원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만나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갈 때부터 영적무지가 해결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 누려야
21세기는 정보가 넘쳐나고 고도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시대다. 영적 정체성이 불분명한 전문인들은 진리를 떠나 하늘 끝에 닿고자 하며 자아를 상실하고 영적 무지 속에 바벨탑을 쌓고 있다. 처처에 전쟁, 재앙, 자살, 분쟁, 테러, 마약 및 알코올중독, 성적 타락, 가정파괴의 흑암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에 직면해 자아를 잃고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 문화로 포장한 창세기 3장 문제 종합세트는 후대들의 영혼을 장악하고 물질문화와 육신을 감각적으로 길들여가고 있다.
전 인류가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이신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구원받고 구원의 영적 축복을 누려야 할 일이 우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는 생명의 진리 속으로 들어가 힘을 다하여 후대들에게 정확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불교
조선 초기 사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왕족의 명복을 비는 불교행사는 자주 시행됐다. 왕궁이나 양반의 여인들은 불교를 자신의 신앙생활, 정서생활의 일부로 삼고 지속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 전부터 친했던 무학 대사를 왕사로 삼고 천태종의 승려 조구를 국사로 삼았다. 무학은 풍수도참사상에 따라 한양을 도읍으로 삼게 하고 태종의 즉위를 도왔다. 세종은 무학의 제자 기화를 총애하여 그에게 유석일치를 강조하는 『현정론』(顯正論)을 쓰게 했다. 세조는 신미, 수미 등 선승을 신임하고 적극적인 불교진흥정책으로 일시적 진흥을 가져왔다. 성종 이후로 등장한 사림학자들이 왕실불교를 맹렬히 비판해 점차 왕실과 멀어지고 산간으로 들어갔다.
태종, 세종대에 불교의 여러 종파를 교종과 선종의 두 종파로 통합하고, 사찰수를 대폭 줄이며 사찰에서 갖고 있던 특권을 통제했다. 몇 만 결의 토지와 십만의 노비가 국가에 귀속됐고 승려의 자격도 국가에서 제한해 관리했다.
경국대전에는 승려가 되려면 심경 금강경 살달타를 암송하는 시험을 치르고 국가에 무명 20필을 정전이라는 이름으로 바쳐야 승려신분증인 도첩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승과를 두어 3년마다 60명(선종·교종 각각 30명)을 뽑아 승직을 주고, 주지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 임명했으며 임기는 30개월로 제한했다.
태종,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암흑기였다. 인도승 지공, 태고보우, 혜근나옹 등의 명승이 출현했음에도 정도전, 조준 등의 정치적 공세로 인해 뜻을 펼치지 못했다. 함허득통(1368∼1433)의 불교·유교의 인의예지와 불교의 인간 완성이 같다는 계몽도 있었다. 세종 때 대장경을 다시 인출하고, 세조 때 간경도감을 두어 많은 불서를 국문으로 번역 간행하는 등 불경도 여러 번 간행했다. 세조 때는 일시적으로의 비호시책이 있었으나,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전반에 걸쳐 불교는 수난을 겪었다.
1546년 명종 때 문정왕후는 섭정이 되자 화엄의 도리에 밝은 설악산 백담사의 승 보우를 중용, 그의 의견을 들어 봉은사를 선종, 봉선사를 교종의 근거로 삼고 보우와 수진을 각각 양사의 주지로 삼았다.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초에 보우, 휴정, 유정, 언기, 태능 등의 고승이 배출돼 교리를 다시 정비하고 교세를 확장했다. 임진왜란 때는 승군이 국난 극복의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 초기의 불교교리가 선교의 일치를 내세우면서도 법화경, 화엄경을 존중하는 이론불교적인 면이 많이 중시됐다. 16세기 이후 불교는 휴정이 ‘교는 부처의 말이요 선은 부처의 마음’이라고 밝힌 것처럼 ‘선에 역점을 둔 행동 불교적 성격’이 강하다.
▲종교 복합적 생활문화
유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는 국가의식과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는 방편으로 이용했고, 이는 실생활문화에 의식으로 사회윤리로 적용됐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다른 풍속이 나타나는데 관혼상제에서 특징이 드러난다. 조선시대에는 종통관념이 발달하면서 가부장제 일부일처제로 정착되고 축첩을 허용해 적처에 소생이 없을 경우 첩자가 이어가도록 했다. 사족 남자들은 15세부터 20세에 유교식 관례에 따라 상투를 틀고 어른의 법도를 배웠으며 15세, 여자는 14세 이상이면 혼인이 허용됐다. 동성동관끼리의 혼인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불교식 화장이 매장으로 바뀌고, 제사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봉제사의 범위와 무덤의 크기도 달리했다. 6품 이상의 고관은 3대, 7에서 9품의 하급관리는 2대, 그리고 일반평민은 부모만 제사하게 됐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주자가례를 따라 4대까지 제사를 지냈다. 집에는 가묘를 두어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절기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관습도 고려 말부터 시작해 16세기 중엽 이후 널리 관행되기에 이르렀다.
농촌에서 행하는 향도 거사패 사장이라는 종교행사는 샤머니즘과 불교 도교신앙이 결합한 것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정기간 술과 가무로 풍요·다산·안녕을 기원하는 일종의 농촌 축제로 전승되고 있다. 점차 규모가 군 단위에서 마을단위로 축소되고, 주로 상례와 장례을 도와주는 기능으로 변질됐다. 상두꾼이 상여를 매는 풍습이 그것이다.
본질적인 진리체계를 상실하고 여론이나 인기로 급조된 지도자와 구원이 없는 이론이나 사상은 일시적인 분위기조성에 그칠 뿐 인간의 영적문제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조선 왕과 왕실, 지배층의 복합된 종교생활은 민간 신앙생활의 구조와 맞물려 민족의 영적문제를 반복하고 배가시켜왔다. 지도자의 영적 정체성, 국왕과 왕실숭배 사상이 백성들의 영혼과 신앙에 영향을 미쳤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사와 권력으로 공중권세 가진 자가 지도자의 영혼과 삶을 잡고 하나님의 생사권과 주권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어두움의 악한 영이 인간들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혼미하게 하고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활동하기 때문이다(계 12:9, 엡 2:2, 엡 6;12, 고후 4:4, 계 13:15).
인간과 인간의 개념, 인간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연구하는 것이 종교이고 학문이다. 어떤 사상과 종교도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을 제시해줄 수 없다. 인생문제 국가문제의 영원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만나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갈 때부터 영적무지가 해결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 누려야
21세기는 정보가 넘쳐나고 고도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시대다. 영적 정체성이 불분명한 전문인들은 진리를 떠나 하늘 끝에 닿고자 하며 자아를 상실하고 영적 무지 속에 바벨탑을 쌓고 있다. 처처에 전쟁, 재앙, 자살, 분쟁, 테러, 마약 및 알코올중독, 성적 타락, 가정파괴의 흑암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에 직면해 자아를 잃고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 문화로 포장한 창세기 3장 문제 종합세트는 후대들의 영혼을 장악하고 물질문화와 육신을 감각적으로 길들여가고 있다.
전 인류가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이신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구원받고 구원의 영적 축복을 누려야 할 일이 우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는 생명의 진리 속으로 들어가 힘을 다하여 후대들에게 정확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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