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신학과 유대인 교육의 가장 큰 허점은 바로 영적인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너무나 완벽한데도, 가장 허술한 이유가 바로 이점이다. 유대인 복음화의 키는 바로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것을 얼마나 성경적으로,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어필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즉 유대인 복음화의 열쇠는 '사람'이다. 복음과 전도, 그리스도와 세계 복음화라는 안경을 끼고 과거 역사와 현재의 사건과 미래를 재정립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영적인 현미경을 통해서 율법과 복음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대인을 살릴 우리 다락방의 후대들은 이런 바른 관을 정립한 부모의 기도와 무릎 속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1) 유대교의 반 기독교주의 극복
유대인들은 왜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거부하는가? 그들의 율법상 지나친 말, 행동은 안 해도, 혹 일부 호의적인 유대인이 있을지라도 그들 내면 깊은 곳에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기독교 종주국이어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십자가를 내걸고 십자군 전쟁이라는 '성전(聖戰)'의 미명아래 숱한 유대인이 처참하게 죽어갔기 때문인가? 그보다 더 이전에 12사도들로 말미암아 유대인 공동체가 깨어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예수가 자신을 메시야라고 했기 때문인가?
입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영안이 멀어버린 유대인이 복음을 방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첫째, 교만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는 일에 착각을 일으켰다.
둘째, 계속 일어나는 예수 믿는 자들의 열매에 유대인들은 격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근본 이유는 자기들의 권위와 종교적 유익(?)과 단체 유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교회를 핍박하였다.
셋째, 하나님 말씀과 그 속에 있는 중심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전통 유지에 급급하였으므로 영안이 어두워져 예수를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예수님을 귀신들린 사람으로 오도하고 말았다(마12:29-45).
넷째, 그러나 무엇보다도 율법주의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율법'은 하나님 말씀인데, 하나님의 구원과 그 비밀을 알지 못하면 '율법주의'가 되어 말씀 싸움, 흑백 싸움, 어휘 싸움, 교리 싸움, 표현 싸움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그들은 복음을 막으려고 발악하여 불량배를 동원하여 복음을 막으려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땅에 계속 증거가 나타나니 그들은 발악을 하며 불량배를 동원하여 복음을 막으려고 하였다.
메시야가 정말 다윗 같은 그런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온다면 또 하나의 왕국은 형성할 수 있으나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지 못한다. 그 고리를 풀려고 육신으로 오셨는데, 다시 그렇게 하실 것인가? 복음을 퍼뜨리려고 이스라엘을 각 강대국 밑에 넣었는데, 그래도 몰라서 직접 사람의 몸으로 오셨는데, 그렇게 하실 리가 없다. 유대인들이 메시야관과 선택관, 그리고 복음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이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부활을 못 믿어서 그렇다. 그래서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런데 늘 그가 말하던 대로 부활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부활을 위장하기 위해 돈을 주고 지키던 간수를 매수했다.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리스도는 일반 사람이면서, 창조주임을 정말 믿는다면 부활이 아니라 부활의 부활도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럼,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영접'이란 단어가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이 부분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리스도(메시야)라는 말을 아는데,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었다. 그들이 볼 때는.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을 진정 이해한다면 ‘영접’이란 말이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될 것이다.
(2) 기독교의 반 유대주의 극복
이방인들은 늘 선택에서 제외되었다는 열등 의식과 선택된 유대인을 보며 아니꼬워 하다가 드디어 주도권이 바뀌면서 밟히던 입장에서 이제 짓밟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열등 의식의 표현밖에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아무 차별이 없다(롬10:12; 갈3:28; 골3:11).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그리스도 모르면 다 죄 아래 있다(롬3:9). 그러나 복음을 받게되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신다(고전1:24).
그러므로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서로간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전10:32). 한 성령을 받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고전12:13). 오히려 세계 복음화를 위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복음의 진 빚을 갚아야 한다.
그들이 완벽하게 행하려 하던 율법에 대하여서도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복음의 후대를 위해 이제 우리가 섭렵하면 된다. 또한 의미 없이 지키는 그들의 절기와 율법에 영적인 의미를 심어주어 생명력 있는 유대인의 절기가 아닌 '여호와의 절기'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1) 유대교의 반 기독교주의 극복
유대인들은 왜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거부하는가? 그들의 율법상 지나친 말, 행동은 안 해도, 혹 일부 호의적인 유대인이 있을지라도 그들 내면 깊은 곳에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기독교 종주국이어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십자가를 내걸고 십자군 전쟁이라는 '성전(聖戰)'의 미명아래 숱한 유대인이 처참하게 죽어갔기 때문인가? 그보다 더 이전에 12사도들로 말미암아 유대인 공동체가 깨어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예수가 자신을 메시야라고 했기 때문인가?
입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영안이 멀어버린 유대인이 복음을 방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첫째, 교만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는 일에 착각을 일으켰다.
둘째, 계속 일어나는 예수 믿는 자들의 열매에 유대인들은 격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근본 이유는 자기들의 권위와 종교적 유익(?)과 단체 유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교회를 핍박하였다.
셋째, 하나님 말씀과 그 속에 있는 중심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전통 유지에 급급하였으므로 영안이 어두워져 예수를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예수님을 귀신들린 사람으로 오도하고 말았다(마12:29-45).
넷째, 그러나 무엇보다도 율법주의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율법'은 하나님 말씀인데, 하나님의 구원과 그 비밀을 알지 못하면 '율법주의'가 되어 말씀 싸움, 흑백 싸움, 어휘 싸움, 교리 싸움, 표현 싸움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그들은 복음을 막으려고 발악하여 불량배를 동원하여 복음을 막으려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땅에 계속 증거가 나타나니 그들은 발악을 하며 불량배를 동원하여 복음을 막으려고 하였다.
메시야가 정말 다윗 같은 그런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온다면 또 하나의 왕국은 형성할 수 있으나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지 못한다. 그 고리를 풀려고 육신으로 오셨는데, 다시 그렇게 하실 것인가? 복음을 퍼뜨리려고 이스라엘을 각 강대국 밑에 넣었는데, 그래도 몰라서 직접 사람의 몸으로 오셨는데, 그렇게 하실 리가 없다. 유대인들이 메시야관과 선택관, 그리고 복음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이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부활을 못 믿어서 그렇다. 그래서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런데 늘 그가 말하던 대로 부활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부활을 위장하기 위해 돈을 주고 지키던 간수를 매수했다.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리스도는 일반 사람이면서, 창조주임을 정말 믿는다면 부활이 아니라 부활의 부활도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럼,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영접'이란 단어가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이 부분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리스도(메시야)라는 말을 아는데,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었다. 그들이 볼 때는.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을 진정 이해한다면 ‘영접’이란 말이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될 것이다.
(2) 기독교의 반 유대주의 극복
이방인들은 늘 선택에서 제외되었다는 열등 의식과 선택된 유대인을 보며 아니꼬워 하다가 드디어 주도권이 바뀌면서 밟히던 입장에서 이제 짓밟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열등 의식의 표현밖에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아무 차별이 없다(롬10:12; 갈3:28; 골3:11).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그리스도 모르면 다 죄 아래 있다(롬3:9). 그러나 복음을 받게되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신다(고전1:24).
그러므로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서로간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전10:32). 한 성령을 받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고전12:13). 오히려 세계 복음화를 위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복음의 진 빚을 갚아야 한다.
그들이 완벽하게 행하려 하던 율법에 대하여서도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복음의 후대를 위해 이제 우리가 섭렵하면 된다. 또한 의미 없이 지키는 그들의 절기와 율법에 영적인 의미를 심어주어 생명력 있는 유대인의 절기가 아닌 '여호와의 절기'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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